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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아 놀자 후기


마음깨우기 명상 세 번의 입원 후 자운선가에 가다.

토파즈 2013-10-24 00:00

2013년 2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를 부르며 구슬프게 우는데 목 밑에서 배꼽까지 하수구가 뚫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며 관통하는 것 같더니 몸이 갑자기 가벼워져 울다가 어리둥절했습니다.전출 학교가 신문에 발표나자마자 새 학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부탁드리기 죄송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이 부서를 맡으셔서 한 해 동안 수고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미 한 해 이상 근무하신 선생님들께서는 그 학교 사정을 아시고 그 부서의 부장자리를 어느 누구도 희망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마음에서는 ‘내가 저 일을 하다가 나가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올라왔지만 언제나 처럼 ‘no’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나는 마지못해 승낙했습니다. 전임교에서도 남들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는 일을 맡아 지치도록 일을 했었는데…새 학교에서 신학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은 서글픔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2월, 3월, 4월

일요일 없이 거의 일주일 내내 학교에 출근 해 아무도 희망하지 않아 결국에는 기간제 선생님을 기획을 시켜 부서일을 정리하고 계획하고 나면 늦은 밤이 되기도 했습니다. 교과목도 수준별로 가르쳐야 하는 과목인지라 일반교과에 비해 수업시간이 많고 방과후에 해야 할 수업도 있었습니다. 한 해 업무의 틀을 어느 정도 잡고 한 시름 놓을 4월 중순 어느 일요일 화훼공판장에서 다육이를 구경하다 갑자기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 약부작용으로 간수치가 올라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수치가 높아 치료 중단, 간으로 입원, 또 다시 각혈, 입원을 반복했습니다. 남편도 아들도 친정오빠, 올케도 치료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이 상황을 몹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치료하다가 부작용으로 친정어머니처럼 결국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친정어머니와 같은 병,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발병을…친정오빠, 올케가 전국에 있는 명상센터를 며칠 동안 찾았습니다. 의심이 많은 올케언니는 4월부터 3차례 자운선가를 찾아 헤라님과 상담하고 주변을 탐색했습니다. “병원만 믿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명상을 하도록 합시다” 올케언니와 오빠의 진심 어린 염려와 사랑,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지 모릅니다.

 

175기 오빠를 보호자로 초참을 함께 신청해 놓고 또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가 결국 장기 입원에 들어갔습니다. 담당교수님도 치료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제 대신 명상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들과 오빠가 자운선가 175기에 참가했습니다. 수련 5일째 오전 아들로부터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자운선가에 오셔야 살 수 있어요. 병원은 안돼요!!!” 오빠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세 번째 장기 치료기간 중 항생제의 부작용으로 왼쪽 어깨뼈가 녹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오른쪽 어깨도 팔, 다리, 손목, 발목, 손가락, 발가락 뼈가 있는 곳에는 모두가 소리가 나고 굳기 시작했습니다.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퇴행성관절염이 급속히 진행되었던 모양입니다. 병원에서도 부작용이 심해지니 통원 치료를 권했습니다. 적당히 운동하면서 치료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퇴원하자마자 자운선가를 가야한다고 오빠가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약봉투를 한 움큼 가지고 오빠와 함께 182기 4번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앉고 서고 몸풀기 운동을 제대로 못해 킹킹거리며 따라했습니다. 감정풀기를 하는데 분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분노 푸는 다른 분의 모습을 보고 웃는 바람에 라사님께 웃으면 않된다고 지적을 받았습니다.

 

슬픔

첫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저는 슬픔의 도가니였습니다. 울다가도 우는 소리가 짐승소리 같아서 제 우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아 ‘누가 울고 있지’ 싶다가도 울음이 끝이 없었습니다. 라사님과 상담하면서 제가 얼마나 슬픔에 쩔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지요. 제가 존경했던 친정어머니. 아버지의 술과 여자, 폭언과 폭행과 위협 속에서 살다 병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신 어머니. 그 어머니의 삶이 제 삶이 되어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숨죽이고 참는 것 저의 생각은 어디로 가고 없고 분노가 뭔지 느끼지도 못하고 참고 참고 참는 삶의 연속에 제 마음 속에는 울분이 그렇게 많이 있었던 같습니다.

 

연단할 때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짐승소리를 내며 울부짖었습니다. 슬프게 살다 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고 어머니 살아생전 어머니께 힘이 되지 못했던 자신이 죄송하고 죄송했습니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처럼 힘겹게 투병하며 외롭게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슬픔이 북받쳤습니다. 2번째 연단할 때 여전히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를 부르며 구슬프게 우는데 목 밑에서 배꼽까지 하수구가 뚫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며 관통하는 것 같더니 몸이 갑자기 가벼워져 울다가 어리둥절했습니다. 아버지와 남편은 3일 동안 3분의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욕을 종이에 써서 손가락 살이 벗겨질 때까지 타이어를 두드리며 쳐부셨습니다. 그러나 분노가 잘 일어나지 않고 고상관념이 심해 험한 말이 잘 나오지가 않아 글을 써 읽어가며 의지적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의 건강을 염려하신 헤라님, 라사님, 마스터님들…천천히 가도록 하자고 말씀하시며 진심으로 도와 주시려는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다음 183기를 올케언니와 함께 참가해서 지금도 모르고 있는 관념들을 찾아 청산하려고 합니다. 저의 아들에게는 저의 아픔과 슬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행복한 삶을 제가 찾지 않으면 아들도 저의 삶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날

도반님들 서로 인사하면서 감사와 고마움으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혜라님, 라사님, 신념님, 마스터님들, 밤늦게 분노 푸는 것을 도와 주신 도우미님들, 맛난 음식을 마련해 주신 분들, 함께 했던 도반님들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