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체마을 new

REVIEW 모든 마음이 아픔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모든 마음이 사랑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곳

행복 스테이 후기


행복학교의 향기를 그리며

조회 915

유리구두 2014-04-22 22:44

안녕하세요, 저는 3월 22일부터 한 달간 행복학교에 체류했던 윤희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사상 제 일기장을 가장 짙게 기록한 한 달을 보내고 왔어요. 그래서인지 행복학교를 뒤로 하고 나온 지 이틀째인 지금도 굉장히 후유증이 심해요.ㅎㅎ 이렇게 제 이야기를 올리는 것으로 착잡하고 우울한 관념을 다잡고 다시 힘내서 으쌰으쌰하겠습니다아~

#1. 내 인생 드라마의 주제
이건 5분 스피치에서 얘기했던 내용이기도 해요..ㅎㅎ 난 어렸을 때부터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를 끝으로 맺는 예쁜 동화+디즈니+드라마 홀릭이었고, 그 중에서도 신데렐라 광팬이었다. 지금 내가 사는 이 현실이 행복하지가 않았기에 늘 나도 언젠가 저렇게 진짜 행복해지는 때가 올거라고, 나도 신데렐라처럼 백마탄 왕자님을 만날거라고 상상하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가을동화에서처럼 내가 병원에서 바뀐 애는 아닐까? 사실 내 진짜 가족은 엄청난 부자에 엄청나게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가족은 아닐까? 하면서. 그래서 4박5일 초참 때도 행복학교 들어오고 나서 초기에도 늘상 억울하고 서럽고 나만 힘들다는 울분을 토해내기만 했다.
그러던 때는 견성회원 특별 프로그램..두두둥.. 심지어 주제는 "열등의식". 이상하게 굉장히 거부감 느껴지는 관념..열등감..? 내가 그렇게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던 열등감을 까고 보니 미칠 것 같았다. 엄마한테 늘상 오빠랑 비교당하며 차별받았던 그 열등의식과 존재자체로의 수치심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놈이 엄청난 증오와 살기로 어마어마한 복수를 해대고 있음에도 그 꼬라지를 보지 못하고 서러움과 분노로 덮어서 '나는 착한데 나는 아무 잘못안했는데 왜이렇게 나를 힘들게해'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가 백마탄 왕자님을 만나 멋있는 궁전에서 행복하게 사는 꿈이 이루어지지않는 것은 내가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나는 아주 피터지는 살벌한 복수혈전을 찍고 있었다. 어마무시하게 당한 것의 몇 배만큼 꼬박꼬박 갚아나가면서.. 이대로라면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지 소름돋아서 스토리텔링하다가 입을 떡하고 벌리고 띵..했다 그렇게 복수의 길을 걷고 있으니 한 순간도 자유로왔던 적이 없이.. 22살의 나이에 맞지 않은 엄청난 삶의 무게를 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두려움에 내 자신을 내몰면서 항상 정신없이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고 바쁜 삶을 살았다. 마스터님들이 '얼~마나 힘들었어~' 할 때 눈물이 어찌나 쏟아지던지..ㅠㅠ
이렇게 지금이라도 복수혈전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게된 것에 다행이라고 감사함에 또 감사함을 느꼈고, 빡센 4박5일이 지나고 마지막 날 자운선가에 떠오른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며 말로할 수 없는 황홀함을 느낄 수 있었다.

#2. 살짝 맛 본 그맛
선물 받은 황홀함을 느끼기도 잠시.. 아주 잠시!!!! 첫 단계로 죽음의 13시간 구보를 떠나게 되었다. 정확히 제 일기장에 이렇게 적혀있어요. "하 그냥 죽이고 싶은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뛰쳐나가고 싶다 미친씨발"..ㅋㅋㅋㅋ 10시간 정도까지는 정말 그렇게 힘들지 않고 얼굴에 나름 미소도 띠고 있었고.. '와 이렇게 구보를 하니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고'이런 가식적인 관념도 여전히 떠돌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경멸하는 그 배바위 지점부터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해서 이어지는 롤링페이퍼와 이틀동안 계속 댐만 왔다갔다하는 미친구보의 향연..★ 이 때부터 강력한 관념들이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했다.
한 번도 이해받고 사랑받지 못한 서러움 속에 존재자체의 강렬한 수치심이 뜨니 너무나 힘들고 외면하고만 싶었다. 어릴 적 부끄럽고 내세울 것 하나 없던 그 찌질이는 이제 없다고. 걔는 지난 과거일 뿐이라고 그렇게 믿었는데.. 그 상처 입은 어린 아이는 지금 이순간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존재 자체로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모든 걸 바꿔버리는 노력을 감행했다. 더 많은 재능과 친구,인맥을 소유하고 대회 입상과 높은 성적의 목표들을 달성해 나가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며 그토록 내 자신을 들들 볶고 못살게 굴었다. 너무 슬프고 내 자신이 가엾었다. 내 몸의 세포 하나까지도 다 바꿔버리고 싶은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나는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리고 그와 세트로 엄청나게 크게 떴던 배신감. 엄청나게 아프고 침도 못삼킬 정도로 목이 아파 죽겠고 눈물은 계속 났다.
연극부에서 배신당한 기억 스토리텔링 하는데 진짜 수치심따위 잊고 엉엉엉어엉댔다. 도저히 관념 분리도 안되고 정신이 없었다. 한나님이 이놈이 내인생의 전부를 쥐고 흔든 큰 놈이라고 걔를 버리라고 하셨다. 순간 이게 나인데..지금 까지 살아온 이 모습이 나인데 얘가 죽으면 나는 내가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나님한테 얘가 사라지긴 하냐며 흑흑대다가 처방받은 미친듯이 댐달리기 숙제를 하고 나니 조금 분리되기 시작했다. 하우스에서 '그래.. 날 잡았다 다 뽑아버리겠어' 의지 다잡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오열했다. 하우스 바닥을 긁으며 울분을 풀고 났는데 다음날 너무나도 상쾌하고 가볍다. 헐...이 맛이구나....
손바닥 뒤집기... 헐.. 재밌다. 수행.

#3. 너무나도 정확한 본래의 메세지
자운선가에 있으면서 가장 놀랐던 것이 바로 정확한 때에 정확한 메세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배 도반님들의 이야기에서부터 벌어지는 상황 모두가 내 관념을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퇴소하기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 내가 방을 옮기게 되었다. 머리로는 당연히 이해가 가는 상황인데 갑자기 엄청난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사람들 시선이고 뭐고 눈물이 터져서 엉엉엉 울다가 황토방에서 미친듯이 울었다.
늘상 사람들이랑 있다보면 코끝이 시큼시큼 시렵고 별일 아닌 일에도 울것같아서 꾹참아오던 그 느낌.. 어릴적 나를 따라다니던 우울함과 서러움의 실체를 잡은 것이다.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나는 데에 대한 서러움, 붙잡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답답함, 차마 나를 떠나지 말라고 말도 할 수 없는 두려움, 어떤 상황에서 결정이 내려질 때 나는 고려되지 않는 다는 소외감, 펑펑 소리내 울고 싶지만 그걸 받아줄 사람조차 없는 외로움..
그 모든게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고 정이 드는 사람들과는 어느 시점에서 헤어지게 되는 상황을 재생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올라온 관념을 내보내고 보니 이렇게 자운선가 안의 상황으로 정확하게 내리치는게 엄청나게 신기하고 감사했다. 이걸 청산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 만날 수 있는 거구나를 느끼니, 자연스레 본래는 정말 나에게 좋은 것만 주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4. 변화
행복학교 퇴소 날,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넌지시 물었다. "아빠, 아빠는 내가 어떻게 살면 좋겠어?" 그러자 아빠 왈 "아빠는 우리 딸이 행복하게 살면 그걸로 되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빠랑 맨발 등산을 하면서 다시 물었다. "그럼 아빠 내가 무슨 일을 하면 좋겠어?"-"아빠는 우리딸이 행복하고 만족하는 일,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좋지"-"헐..아빠는 내가 돈 엄청 많이 벌고 명예롭고 성공한 그런 사람 되길 바라는 거 아니었어?"-"아니야. 윤희야 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해"....

엄마에게도 물었다. 놀랍게도 엄마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같은 대답을 하신다. 엄마는 한 달 행복학교 보내줄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또 가고 싶으면 미국연수가고 유럽교환학생갈때 쓰려고 모아뒀던 돈으로 자운선가 가라고 허락도 해주신다.
우리 엄마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엄마에게 힘들다는 말, 내 마음 좀 알아달라는 말 내뱉는 게 무지 힘든일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내가 펑펑 우는데 너무나 따뜻하게 안아주신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우리 딸 그렇게 상처가 많은지 몰랐다고.. 아픈 마음으로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건지 몰랐다고 미안하다며 엄마가 나를 품어주신다. 수행하고 왔음에도 엄마가 나보다 오빠가 우선이다고 생각하는 관념으로 투덜대고 잉잉우는 나를 너무나 너그럽게 받아주고 사랑을 주는 우리 엄마가..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난다. 우리 엄마가 이처럼 크고 또 큰 존재였는지 몰랐는데..

내가 하우스에서, 황토방에서 그토록 울부짖었는데. 나 좀 놓아달라고.. 제발 내가 하는 것들 그냥 좀 하게 해달라고. 나 좀 숨좀 쉬면서 살고 싶다고. 나 좀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그렇게 소리쳤었는데. 아빠는, 엄마는 항상 그랬단다.. 내가 내 관념에 쌓여서 스스로 짐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면서 부모님을 원망하고 오빠를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했다. 수행해서 삶이 바뀐다는게 다른 사람이 바뀌는 건 줄 알았는데 그보다 먼저 내가 바뀌는 것이었다. 못 보던 것을 보게되고 못 듣던 것을 듣게되고.. 못 느끼던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갈구하고, 다른 무엇인가를 손에 넣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내 존재 자체로 그냥 괜찮다고..
이제 진짜 다른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고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본래의 뜻에 따라 원형의 삶을 살겠다는 새로운 꿈을 안을 수 있었던 소중한 한 달.
한 달이 지나고 나는 부자가 되지도..명예를 얻지도. 이력서에 쓸 수 있는 스펙을 쌓지도 않았지만.. 지금에야 비로소 진짜 내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정말 넘치는 사랑 속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혜라님 한나님 젬마님 라사님 신념님..그리고 수많은 도반님들.. 모두 축복이었어요. 필요하지 않냐며 먼저 건네주신 모자 슬리퍼에서부터.. 자신의 일처럼 늘상 도와주시던 그 따뜻한 손길들, 사랑이 담긴 봉숭아물과 나눠먹던 맛있는 간식들, 진심으로 나누던 이야기들까지 다 큰 사랑이었음을 지나고나서 더 크게 느끼게되네요.. 너무나 사랑합니다. 또 만나요...♥